"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무엇에도 거리낌 없는 "
by eunky
언제 커피나 한 잔
언제 커피나 한 잔 하자는 말은, 그 말을 쓰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냥 지나가는, 헤어짐의 인삿말 정도일 수 있으나 나는 저 말을, 정말 커피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아주 간혹 쓴다. "언제 커피나 한 잔 해요"란 말을 하면 정말 언젠가 near future 커피를 해야 할 것만 같다. "언제 밥 같이 먹어요"란 말을 하면 정말 밥을 같이 먹어야 할 것만 같다. 저 말을 하고 커피를 마시지 않고 밥을 같이 먹지 않으면 숙제 안 한 것 처럼 찜찜하고 거짓말 한 것 같은 기분. 그래서 애초에 별 의미 없이 던지지 않는 말들이다.

작년 6월 중순 경, 나는 산디과 친구들에게 저녁을 얻어 먹으면서 "언젠가는 우리집에 초대하겠다"란 말을 했다. 이 말은 "언젠가 커피를 마시자", "언젠가 밥이나 먹자"와는 차원이 다른, 매우 무게있는 발언이었는데 이 말을 던진 그 순간부터 나에겐 숙제가 하나 생긴 셈이 되어 버렸다. 그 후 6개월 뒤, 이 말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몇이나 될까 싶었던 12월 25일, 나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physically, mentally 일주일 정도를 준비한 정찬을 대접했고 그 일주일 동안의 시간과 친구들이 왔던 시간동안 매우 즐거웠 했다. 식사가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진 와인과 모과차, 직접구운 쿠키와 크리스마스 케익, 과일과 함께했던 수다스런 밤은 올 한해 중 가장 행복했고 따뜻했던 시간이었다.

미애는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대전으로 돌아갔다. 미애는 1월이면 덴마크로 교환학생을 가는데 정말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기약없는 이별을 한 셈이다. 그리고 이런 기약없는 이별에 "언제 커피나 한 잔" "밥이나 한 끼"란 헤어짐의 인삿말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. "언제 또 보자" 정도의 말도 부담되고 "언제 또 보나?" 이 정도의 인삿말로 그냥 서로 아쉬워 했던 것 같다.
by eunky | 2006/01/01 01:52 | 언제 커피나 한 잔 | 트랙백 | 덧글(0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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